필리핀 북부의 산지에는 안개가 자주 깔린다. 해가 떠도 금세 구름 아래 잠기는 날이 많다. 그 길을 처음 밟았을 때, 고광덕 선교사는 자신의 발 아래 펼쳐진 풍경이 마치 한 장의 낯선 지도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바기오라는 이름만 들었을 뿐, 그곳 뒤편의 험준한 산지 마을에 자신이 평생을 걸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부르심을 느꼈고, 그 부르심은 결국 그의 삶 전체를 이 낯선 땅에 뿌리내리게 했다.
선교는 단순한 종교적 전달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으며 변화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그 산길을 걷는 순간 직감했다. 바기오와 그 주변 산지 마을은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차 한 대 다니기 어려운 길, 비가 오면 한순간에 끊겨버리는 계곡, 병원이 없어 감기 하나도 목숨을 위협하는 현실, 학교가 없어 아이들이 글자를 배우지 못하는 마을들. 그는 이곳이야말로 복음의 불모지이며 동시에 가장 복음이 필요한 땅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가족과 함께 짐을 꾸렸고, 그렇게 필리핀 산지 선교의 길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열리기 시작했다.

고광덕 선교사는 그곳에서 교회를 세웠다. 한 곳, 두 곳, 그리고 어느새 열네 곳. 그가 세운 교회들은 단순한 예배당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어 글자를 배우고 노래하던 학교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이 병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던 작은 진료소가 되었고, 주민들이 삶을 나누던 공동체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그는 교회를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세우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현지인만큼만 사는 삶을 선택했다. 좋은 집을 구할 수 있어도 산지 주민들이 사는 판잣집 옆에 작은 집을 얻었고, 차를 살 형편이 되어도 주민들과 함께 걸어 산길을 올랐으며, 때로는 함께 굶고 함께 웃으며 일상의 모든 순간을 공유했다. 그에게 선교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서 있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역은 교육으로 뻗어 나갔다. 그는 필리핀 영지국제학교와 GTCC 대학의 바기오 분교와 신학대학원 설립에 기여하며 현지 지도자들이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세울 수 있도록 돕는 데 힘을 쏟았다. 현지 청년들이 목회자로, 교사로, 지역 리더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그는 선교의 가장 깊은 기쁨을 맛보았다. 또한 언어 연수 프로그램을 열어 청소년과 주민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배우도록 도왔고, 아이들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하며 교육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그는 늘 교육은 한 아이의 인생뿐 아니라 한 마을의 미래를 바꾼다고 말했다.

의료 선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국 새롬의료선교회 회장을 맡아 의료 봉사팀을 필리핀 산지 곳곳으로 보내는 일을 주도했고,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진료소를 운영하거나 약품을 지원했다. 그가 직접 데리고 내려온 응급 환자도 많았고, 새벽마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리던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밤새 걸어 내려오는 길조차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의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시점부터 그는 더 큰 네트워크의 흐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열린선교회였다. 이 모임은 한국 교회와 필리핀 산지의 사역지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었고, 단기선교팀이 체계적으로 현장을 방문하며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산지 마을 곳곳에서 교회와 학교가 자리 잡았고, 여러 지역에서 다음 세대가 선교사로 자라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사역은 단순한 선교 활동이 아닌 지역 공동체 변화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의 손을 거쳐 간 교회는 이제 현지 지도자에게 맡겨져 자립 교회로 성장하고 있고, 그가 세운 교육과 의료의 기반은 오늘도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있다.
고광덕 선교사는 여전히 그 땅을 걷는다. 자신이 젊음을 바쳐 일군 길이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내가 하였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 하셨고, 나는 그저 쓰임 받았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새로운 꿈을 꾼다. 더 많은 현지 지도자가 일어나고, 더 많은 아이들이 꿈을 품고, 더 많은 교회가 자립하여 그 땅의 빛이 되기를. 그가 평생 지켜 온 한 문장이 있다. 선교사는 현지인 곁에서 현지인의 속도로 걸어야 한다. 그 문장은 그의 삶이 되었고, 그의 삶은 필리핀 산지 곳곳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그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복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