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 학자, 성자, 전도자, 목자가 되라, 그리고 사람이 되라.”
이 다섯 가지 가르침은 조현묵 목사의 삶을 관통하는 나침반입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필리핀 현지에서 복음과 교육, 그리고 정의를 함께 붙들었던 그의 여정은 한 목회자가 어떻게 시대와 현장을 넘어 ‘사람 됨’의 윤리를 실천했는지 보여줍니다.
1990년대 중반, 필리핀에 뿌린 청년 선교의 씨앗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조현묵 목사는 일찍이 청년 목회 와 선교적 교회를 꿈꿨습니다. 이 꿈의 현장은 필리핀이었습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약 1996~1997년경) 필리핀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마닐라의 주요 한인 교회였던 임마누엘교회의 담임목사 및 원로목사로 섬기며 한인과 현지인을 아우르는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당시 필리핀은 한국 유학생과 청년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고, 조 목사는 그들을 복음으로 양육하는 데 힘썼습니다.
그는 훗날 필리핀 청년 사역의 대표적인 연합 집회인 ‘필리핀 코스타(KOSTA)’의 산파 역할을 할 정도로 청년 목회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습니다. 필리핀 한인교회 협의회 증경회장 등 주요 직책을 맡아 한인 사회 연합과 선교 발전을 이끌었으며, 때로는 교민들의 안전 문제 등 예민한 현안에 목소리를 내며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타이타이의 기적, 무상 교육기관 DCBT를 세우다
조 목사 사역의 정점은 교육을 통한 신분 변화라는 명확한 비전 아래 실행되었습니다.
마닐라 도심에서 3시간 떨어진 빈민가 타이타이(Taytay) 지역에 세워진 Daehan College of Business & Technology(DCBT, 대한국제대학)가 바로 그 산물입니다. 이 학교는 조 목사가 20여 년간 붙들었던 한 손에는 기술, 한 손에는 복음을 실현한 결정체입니다.
필리핀 정부의 정식 인가를 받은 이 고등학교 및 대학은 경제적으로 교육 기회를 놓치기 쉬운 빈곤층 청년들에게 무료 또는 저렴한 등록금으로 직업 교육과 신앙 교육을 함께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 졸업 후 꿈을 포기해야 했던 빈민층 자녀들에게 사교육 수준의 공교육을 제공하여, 가난의 굴레를 끊고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조 목사는 우리의 사역은 누군가의 신분을 바꿔 주는 사역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교육을 통한 희망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태권도와 미디어, 전문 기술로 자립을 돕는 선교
조현묵 목사의 선교 철학은 전문인 선교(BAM, Business As Mission)와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사)세계태권도선교협회(WTMA) 필리핀 지회장을 맡아 태권도를 통한 복음 전파에 힘쓰는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직업 기술을 교육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서 방송 기술을 배워 방송국에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청년들에게 무술뿐만 아니라 미디어 기술까지 전수했습니다.
이 청년들은 태권도와 미디어 기술을 익혀 학교 체육 교사나 방송국 직원으로 취업하게 됩니다. 이는 필리핀 사회에서 낮은 계층에 속했던 이들이 안정적인 직업과 신분을 갖게 되는, 진정한 의미의 선교적 결실입니다.
현재 그는 조이 필리핀 방송국 국장으로도 활동하며 이 전문인 선교 사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필리핀 기아대책기구 이사장,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 아시아노회 증경노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선교·구제·체육 사역을 결합한 다각적 선교 모델을 시도했습니다.
피 흘리는 현장을 지키다 정의와 연대의 리더십
조 목사는 목회 영역 밖에서도 헌신적인 리더십과 연대 의식을 보여주었습니다.
필리핀에서 한국인 선교사와 교민이 피살되거나 납치되는 사건이 이어지자, 그는 한인총연합회 및 교계와 함께 현상금 모금과 치안 개선 요구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조태환 선교사 피살 사건 때는 범인 검거를 위한 모금운동과 대책 활동을 이끌며, “더 이상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동료 선교사들의 인권과 안전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필리핀에서 장기간 복역 중이던 백영모 선교사 사건을 두고, 그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셋업(set-up) 범죄의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며 석방 대책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물론 사건의 진실 여부와 별개로, 그의 행동은 같은 선교사이기에 돕는 것이 옳다는 연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대형교회 청빙을 거절하며, 사람이 되는 목회와 귀국 후 사역
26년의 필리핀 사역을 마친 조현묵 목사는 현재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가나안교회(Canaan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그의 윤리적 굳건함은 한국 귀국 전후에도 빛을 발했습니다. 2018년 순복음부평교회 후임 청빙 제안을 받았을 때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는 기존 목회자에 대한 오해와 갈등 속에서 자신이 자리를 맡는 것이 “사람 된 도리와 신의에 어긋난다”며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는 당시 신자·학자·성자·전도자·목자가 되라, 그리고 사람이 되라는 모교 신학교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렸다고 고백합니다.
조 목사의 선교적 열정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나안교회는 여전히 필리핀의 학교와 선교 네트워크를 돕고 있으며, 선교는 교회의 선택이 아니라 존재 이유라는 신념 아래 선교사 회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02 Project와 같은 뜻깊은 사역을 펼치며, 해외에서 헌신하는 선교사 102명에게 종합 정밀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등 지친 선교사들을 돌보는 새로운 차원의 헌신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빈민가에서부터 한국 도심의 작은 교회에 이르기까지, 조현묵 선교사의 여정은 “복음과 사람, 그리고 정의”를 동시에 붙들려는 한 목회자의 진실된 기록으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