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30일

동남 아시아 교육선교 이렇게 준비하자.

프롤로그(Prologue)

왜 나는 교육선교사 라는 길을 걸었는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예비 선교사님, 혹은 선교의 길을 꿈꾸는 형제자매 여러분께 먼저 조심스레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삶을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계획한 그대로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 책에 담긴 저의 기록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질문 앞에서 단호한 “아니오”라는 답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계획과 능력을 신뢰하던 사람의 전형이었지만, 인생의 무너짐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견고하고 깊은지를 배운 사람입니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의 저의 삶은 한때 누구보다 안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국민을 지키는 경찰 공무원이었습니다. 제복을 입고 국민을 보호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꼈고, 매달 들어오는 안정된 급여는 제 미래가 안전하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저는 다른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제 인생의 방향을 제 능력으로 얼마든지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노력하면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이 말이 나의 신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교만하고 어리석은 확신이었습니다.

그런 자신감은 결국 더 큰 세상과 성취를 향한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저는 공무원 생활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경호경비회사를 창업한 것입니다. 초반에는 사업이 놀라울 정도로 잘되었습니다. 거래처는 늘어났고, 사람들은 저를 젊은 사업가의 성공 모델처럼 대했습니다. 저는 더 큰 사업, 더 큰 성장을 꿈꾸었고, 탄탄해 보이던 미래는 제 손에 잡힐 듯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계획은 언제나 연약합니다. 저는 그 사실을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경험했습니다. 연쇄 부도라는 거대한 파도는 사업의 모든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어제까지는 단단해 보였던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저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많은 돈, 명예, 관계, 모든 것이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남은 것은 갚을 수 없을 만큼의 큰 빚과 배신감, 그리고 ‘실패자’라는 무거운 낙인이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때 한국에서는 ‘천냥백화점’, 즉 저가 잡화점 사업이 큰 유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천냥백화점 하면 누구나 재기할 수 있다.”
“한 번만 발품을 팔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저는 그 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습니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길의 출발점이 바로 ‘필리핀’이었습니다. 실상 제가 필리핀에 간 이유는 선교가 아니라, 사업을 다시 일으켜 보려는 마지막 발버둥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필리핀 땅을 처음 밟게 된 정확한 동기였습니다.

저는 필리핀에서 천냥백화점 물품을 싸게 구매해 한국으로 들여와 재기해 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그 희망조차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필리핀에서 저는 심각한 사기를 당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자금까지 사라지자 저는 말 그대로 빈손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실패했고, 재기를 위해 온 필리핀에서도 실패했습니다. 인생의 두 번의 큰 무너짐 앞에서 저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철저한 고독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절망의 순간, 하나님은 저를 만나셨습니다. 저는 완전히 고꾸라진 자리에서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왜 이러십니까 ?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 왜 저를 이곳까지 데려오셨습니까? 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어떻해야 합니까 ?”
저는 이제 더 이상 제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패의 그림자는 제 마음을 짓눌렀고, 미래는 안개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쫓겨나 감옥에 던져졌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굴에 숨어 지낼 때 어떤 절망이었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선교 신학자 레슬리 뉴비긴의 말, “우리가 성공으로 가득 차 있을 때보다, 완전히 비어 있을 때 하나님은 그곳을 채우신다”라는 문장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실패의 끝에서야 ‘전적 의지’라는 믿음의 기초를 붙들었던 것처럼 저 역시 바닥에서 하나님을 붙잡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묻기 위해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금식은 단순한 식사의 절제가 아니라 제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내려놓는 시간, 저 자신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이었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여러 번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경찰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사용할 일들이 있을까요.?”
“하나님, 저는 사업을 했습니다. 이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자신이 하려고 하던 생각은 잠잠해지고, 하나님의 음성은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금식 마지막 날, 하나님은 제 마음에 한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는 장면이 아니라, 그들에게 스스로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번개처럼 제 마음을 때렸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음으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6)

저는 깨달았습니다. 필리핀의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부재, 지식의 부족, 생각하고 판단할 힘이 없기 때문에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하루의 양식을 주는 것은 긍휼이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미래를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실패와 무너짐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계획이 무너져 아무것도 붙잡지 못할 때, 나를 새로운 부르심 위에 세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제가 필리핀에 온 것은 사업 때문이었지만, 하나님이 저를 필리핀에 머물게 하신 이유는 교육선교사로 부르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예수님도 이 땅에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가르치심’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산에서, 배 위에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지막 말씀 가운데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9-20)

저는 무릎을 꿇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저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제가 가진 이 빈 인생이라도 주님께 드립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가겠습니다.”

그 고백이 바로 저의 22년 교육선교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자였던 저를 새롭게 빚으셨고, 이 땅의 아이들에게 배움과 희망의 빛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제 인생은 녹슨 쟁기 같았지만, 하나님은 그 쟁기를 사용해 필리핀의 척박한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저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무너졌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절망 속에 있었지만, 그 절망 자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문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인생의 어디에 있든, 심지어 인생의 바닥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빚기 시작하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계획이 무너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시작하십니다. 그 길이 바로 부르심의 길이며, 교육선교의 길은 제가 그 길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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