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카비테주 제너럴 트리아스 시(General Trias City)의 변두리, 현지인들이 “마약마을(Kikorosa)”이라 부르는 좁고 어두운 골목 한복판에 작은 예배당 하나가 서 있다.
마약 중독과 빈곤, 폭력, 범죄가 일상처럼 스며든 이곳은 오랫동안 선교사들의 발걸음조차 닿지 못한 땅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곳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한영총회 동남아시아 필리핀노회 소속 이자경 선교사는 필리핀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며 복음의 씨앗을 심어왔다.

그가 이 지역에 들어온 초기만 해도 분위기는 험악했다. 필리핀 정부의 강경한 마약 단속 정책 속에서 총성이 들리는 날도 드물지 않았고, 주민들 대부분이 불신과 폐쇄성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자경 선교사는 “누구나 피하는 자리야말로 복음이 가장 먼저 가야 할 자리”라는 확신으로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인사를 건네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쌓인 신뢰는 어느 순간 이 선교사를 “목사님”이 아니라 “우리 동네 엄마”라 부르게 했다.
그의 사역의 중심에는 한영키코로사교회(영지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주민들의 도움 속에 5개월의 공사를 거쳐 새 예배당으로 입당했고, 지금은 아이들, 중독자, 무직 청년, 싱글맘, 노인들까지 드나드는 지역 공동체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찬양과 예배에 대한 열정은 마약과 폭력이 뒤섞인 마을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고, 아이들이 총성이 아닌 찬양 소리를 배우는 변화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교회는 키코로사 제2성전(한영제일교회) 건축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건물이 아닌 “삶을 재건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자경 선교사의 출발점이 전통적인 신학이 아니라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한 클래식 음악 전공자로, 대학 동문들이 종종 필리핀을 방문해 작은 후원 음악회를 열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도 ‘필리핀 선교를 위한 작은 음악회’, ‘희망 음악회’ 등이 이어졌으며, 그는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사람들 마음을 열고 공동체와 연결하는 특별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 이 음악적 배경은 선교 현장에서 예배와 교육, 문화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귀한 도구가 되었다.
이자경 선교사의 영향력은 개인 교회 사역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한영총회 동남아시아 필리핀노회에서 2019년 제5대, 2020년 제6대 노회장으로 선출·연임하며 교단 내 선교사들을 연결하고, 노회 차원의 연합 사역을 이끌어온 리더이기도 하다.
한국과 필리핀의 교회, 기관들과 활발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선교의 구조적 기반을 세우는 데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 사회를 위한 장기적 비전으로 “삶 이후 공원(Life After Park)” 조성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회 확장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품고 치유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사역으로 평가된다. 이 프로젝트는 죽음 이후의 영적 의미뿐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공공적 성격의 비전이다.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열리는 집회와 보고회에서 그는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이 필요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마약 판매상들이 예배에 참여해 삶이 회복되는 이야기, 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성장하던 아이들이 찬양을 부르는 장면, 그리고 총성이 멈추고 공동체가 새롭게 세워지는 변화는 그의 사역이 얼마나 깊고 실제적인지 보여준다.
오늘도 이자경 선교사는 키코로사 골목을 걸으며 주민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삶에 귀 기울인다. 그에게 선교는 교회를 짓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일이며, 위험이 아닌 소명이다.
어두운 마약 골목에 작은 등불을 켜는 이자의 걸음은, 필리핀 선교의 한 페이지를 넘어 한국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진짜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